
안녕하세요, 구원자.
이곳이 당신의 영지인가요?
따뜻하고… 온화한 곳이네요.
역시 당신이 있는 곳은 분위기가 다르군요.
제가 예상했던 것보다 좋아요.

페이렌은 에덴에서
마나 농도가 가장 높은 나라예요.
이런 특징 때문에 동식물이 잘 자라고
페이렌의 숲속에서 수많은 정령이 태어나죠.
페이렌의 모두는 숲의 중요성을 아주 잘 알고 있고,
소중히 여기고 있어요.
저도 페이렌의 숲을 지킬 수 있어서…
아주 기뻐요.

제 능력 때문에 저는 놀라는 일이 거의 없어요.
대부분의 사건은 미리 '보이'니까요.
수년 전에 숲지기 아이들이 절 놀라게 하려고
다양한 방법을 시도한 적이 있는데…
제가 한 번도 놀라지 않아서 실망하더군요.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은 어쩔 수 없잖아요?

제 온실을 자세히 들여다보신 적 있나요?
사실… 온실에 있는 식물들은
모두 모형이랍니다.
페이렌의 아이들을 사랑하지만…
온종일 머릿속이 시끄러운 건 버거울 때가 많아요.
그래서 밤에만이라도
조용한 곳에 있고 싶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가짜로 그 공간을 가득 채운다고
달라지는 건 없는데 말이죠.
웃기죠?

제가 일주일간 잠드는 '작은 겨울'이 찾아오면,
페이렌은 한창 바빠지죠.
평소에는 제 능력으로 숲을 구석구석까지
정찰하는 만큼…
제가 없는 동안 숲지기 아이들이
각 방면의 경계를 강화하느라 고생이 많거든요.
특히 제 보좌관 라우라는
제 침실을 일주일간 잠도 자지 않고 지킨답니다.
…정말 강한 아이예요, 라우라는.

뜨개질은 정말 재밌어요.
하나의 실로 시작하지만, 못 만드는 게 없잖아요.
목도리, 스웨터, 꽃, 인형, 가방…
도안만 있다면 아마 페이렌도 뜨개질로 만들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뜨개질을 하면서,
우리의 삶도 이와 비슷한 것 같다고 생각했어요.
운명이라는 작고 질긴 하나의 실로 연결되어 있지만,
어떻게 꼬고 엮냐에 따라 모두 다른 삶을 살잖아요.
흥미롭지 않나요?

저도 미숙하고 불안정했던 시절이 있었어요.
감사하게도 선대 대현자님께서 절 인정해 주셔서
이 자리까지 올 수 있게 되었죠.
물론… 모든 이들이 제가 대현자가 되는 걸
찬성한 건 아니지만요.
그래도 선대님께 부끄럽지 않도록
페이렌을 지킬 생각이에요.

꿈은 생각이 반영된다고 하죠?
구원자도 그런 꿈을 꾸시나요?
저는… 꿈을 꾸지 않아요.
잠들고 눈을 뜰 때까지 아무런 기억이 없어요.
일주일간 너무 깊은 잠에 빠져서 그런 건지,
아니면 잠든게 아니라 다른 현상이라서 그런 건지 모르겠네요.
이런 제가 신기한가요?

정보는 많으면 많을수록 유리해요.
'예측'의 정확도가 올라가니까요.
하지만 그럼에도 미래는 언제나
예상 못 한 방향으로 흘러가더군요.
그게 이 세상의
불편하면서도 흥미로운 점이라고 생각해요.

구원자에게 남은 평생은 얼마나 되나요?
70년? 80년?
알고 있었지만, 당신에겐 평생인 시간이
우리에겐 너무나 짧네요.
그래도 제 평생 당신은 잊지 않을 거예요.

트로이카의 새로운 왕이
양서류를 좋아한다고 들었어요.
후후… 보는 눈이 있으시네요.
저도 청개구리들을 특별히 소중하게 여긴답니다.
생각난 김에 몇 마리 선물해 드려야겠어요.

구원자가 생각하는
이상적인 반려자의 조건은 무엇이죠?
다정한 성격? 여유로운 재력? 아름다운 외모?
어떤 조건이라도 괜찮아요.
전 무엇이든 준비됐어요.

극지방에 가면
밤에도 해가 지지 않는 백야현상이 있다더군요.
어쩐지 저와 닮은 장소네요.
후후… 궁금해졌어요.
그곳에서라면 밝은 낮에도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을까요?

전 페이렌 정령들의 잠재력을 읽어내서
가능성이 있는 몇몇을 후원하곤 해요.
제 예상이 빗나간 적은 거의 없죠.
잘 성장해 주면 마음이 뿌듯해져요.
처음엔 제 도움을 거부하는 아이들도 있긴 하지만…
결국엔 제 뜻을 이해할 거예요.
구원자에겐 어떤 잠재력이 있을지 궁금하네요.

제 거미를 두려워하는 아이들이 종종 있어요.
저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가끔 듣죠.
구원자도 그렇게 생각하나요?
저와 거미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지만 깊이 생각해 본다면,
사실 우리가 많이 닮았다는 걸… 알 수 있을 거예요.

생물이라고 해서 모두 제 말을 따르는 건 아녜요.
하지만 당신을 제 온실로 부른 청개구리는
제 의지로 움직여준 게 맞아요.
당신을 보고 싶다는 마음 반,
당신이 개구리를 따라와 줄지 궁금한 마음 반.
후후… 당신이 당황스러워하던 그 모습이란.
재밌었어요.

페이렌식 식사는 잘 즐기셨나요?
제 나라의 음식은 대부분 자연에서 얻죠.
과일, 열매, 채소, 고기…
자연스러운 순환 과정이지만
누군가가 살기 위해 누군가 죽어야 한다는 점이 아이러니해요.
자연은 생명을 소중히 여기면서도
한편으론 덧없이 다루기도 하죠.
이런 생각을 하고 있으면
기분이 묘해져요.

당신의 손은 따뜻해요, 구원자.
뺨도… 입술도…
제 신체에도 온기는 있지만,
당신의 온기에 닿는 건 왜 이렇게 좋을까요?
어쩔 땐 하루 종일 당신 손만
바라볼 때도 있는 것 같아요.
당신이 절 어리광쟁이로 만들었으니
책임지셔야죠?

구원자는 잠드는 것이 즐거운가요?
저는 썩 즐겁지 않아요.
'작은 겨울'이 찾아오는 것도 반갑지 않죠.
마치 그 기간동안…
제가 죽는 것처럼 느껴지거든요.
물론, 저는 정령이기에
죽는다는 표현도 애매하지만 말이에요.
하지만 일주일 뒤에 제가 눈을 뜰 수 있을까…
늘 확신이 들지 않아요.
제가 도저히 예측할 수 없는 미래죠.
그 점이 기분 나빠요.

구원자, 지난밤에 당신 꿈에 찾아갔는데
기억나시나요?
밤새 제 이름을 애타게 불러놓고
기억 안 난다고 말하시진 않겠죠?
꽤 즐거웠는데…
기억이 안 나신다면 어쩔 수 없죠.
후후… 꿈 내용은 가르쳐주지 않을래요.
스스로 기억해 내도록 하세요.

주변 정보 분석 중…
흥미롭군요.
아름다운 영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