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언제봐도 흐리멍텅한 낯짝이네.
왜 말을 거는 거야?
'벨라나가 뭐 하는 중인지 궁금해서'…?
뻔뻔해가지고는…
니가 알 게 뭐야.

가장 가깝게 지내는 정령이 누구냐고?
넌 정말 나한테 관심이 많구나. 짜증나.
딱히 친한 건 아니지만…
아야메랑 하루. 그 둘은 그럭저럭 괜찮게 싸우는 것 같아.
그 점은 마음에 들어.

벨라나가 눈을 감고 벤치에 앉아 있다.
산들 바람을 느끼고 있는 모양이다.
기분이 좋아보인다.
깨우지 않는 게 좋겠다.

미니 장미라는 것도 있지.
품종을 개량시켜서 작게 만든 장미야.
장미는 접목과 개량이 쉬운 품종이라서
종종 온갖 키메라가 태어나곤 하지.
잊지 마. 미니 장미에도 가시는 있어.

…?
(잠에서 깼더니, 그 녀석이 왔다간 기척이…)
…거슬려.

불사형의 삶이 궁금하다고?
그냥 살아갈 뿐이야. 죽음과 삶의 경계에서.
넌 왜 그렇게 매사 호기심이 많은 거지?
여차하면… 너도 반죽음 상태로 만들어줄까?

타인의 악의에 둔감하면 살아가기 편하다고들 하지.
그 정확한 예시가 너야.
어떻게 생각해? 자타공인 구원자.

난 음식을 요리해본 적이 한 번도 없어.
다음에 같이 요리해보지 않겠냐고…?
그럼 너랑 같이 밥 먹어야 하잖아.
싫어.

'벨라나가 좋아하는 음식이 궁금하다'라고…?
정말… 너무 하찮아서 말이 안 나온다.
음식은 매워야 먹을 맛이 나.
그냥 한 순간의 여흥이지만.

술에 관심이 있냐고? 그냥 그래.
의외라고? 이 편견 덩어리.
나랑 알콜을 뭐라고 생각하는 거야?
기분 나빴냐고? 아니. 그냥 적당히 욕해봤어.

생일이 궁금하다고?
넌 정말 시덥잖은 일에만 관심을 갖는구나.
알아서 뭐하게?
축하한다는 말을 하고 한참 뿌듯해할 셈이야?
내가 그런 걸 너한테 알려줄 리가 없잖아.

내 장미 정원은 항상 만개한 상태야.
이 꽃들은 시들지 않지.
어떻게 이게 가능하다고 생각해?
아주 많은 양의 피가 있다면… 가능해. 후후.

아케나인의 길고양이들은 영 사람을 피하지 않네.
경계심이 없어.
늘 흐물텅하니 맥아리 없어보이는 게 딱 너같아.
칭찬 아니야. 좋아하지 마.

방주의 정령 메피스토펠레스를 메피라고 부르면서
귀엽다고 꺅꺅대는 모습이나…
잘난 듯이 모두 앞에서 위선을 떠는 유리아랑
매일같이 시시덕거리는 모습이나…
참 좋겠네?
축하해. 자타공인 구원자.

벨라나가 장미 정원 근처의 벤치에 누워 잠들어 있다.
어딘가에서 전투를 마치고 온 모양이다.

…내가 바라던 대로… 너를 이용해서…
나를…

벨라나가 잠결에 중얼거린 말은 과연 무슨 뜻일까.

넌 모르겠지만, 아케나인에는 옛날에 인형 공장이 있었어.
선택받지 못한 인형 재고들은 결국
산송장처럼 이리저리 바닥을 굴러다녔지…
정령들이랑 다를 게 뭐야?
대답해 봐. 어떻게 생각해?

친한 정령이 있냐고?
있겠어?
왜 본인의 무식함을 증명하려고 하는듯한 질문밖에 안 하는 거야?
친구가 많아서 참 자랑스러운 인생인가봐?

네가 원래 있던 곳에서는 '장미 전쟁'이라는 게 있었다고?
어떤 전쟁이었는데. 설명해 봐.
흐음…
여기나 거기나, 비슷하구나.

정령들은 기본적으로는 죽지 않아.
그저 아무 의미 없는 매일매일을 보내야 해.
그게 정말… 유감스럽기 짝이 없어.
하지만, 어쩌면 너라면…

넌 죽을 뻔한 적이 있어?
자세히 알려줘.
아주 자세히…
내가 질릴 때까지.

정원에 마음대로 들어오지 마.
식물엔 가지치기가 필요하지.
위선은 질색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