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후우… 간만에 이 모습으로 돌아오니
영 적응이 안 되네.
그래도 다들 생각보다 많이 반겨주는 것 같아서 다행이야.
가벼운 이미지 체인지 같은 느낌이랄까.
너는 어때, 구원자?
역시 지금 모습 쪽이 좀 더 멋져 보이려나?

최근에… 어쩌다 보니
타브리아의 대제 폐하와 잠시 마주쳤는데.
…이상한 기분이야.
분명 직접 만나뵌 적이 거의 없는데도…
어째서인지 조금,
익숙한 느낌이 들었어. 왜일까…

바이스 님이 한때 내 '제자'로 있었다고는 해도
사실 따지자면 그런 느낌은 아니라고 해야 하나…
내가 좀 더 대단하고, 그럴싸하게 지혜로워서
정말 그 분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었으면 모를까.
제자라고 하면서 정작 해주신 건 집안일 하기랑
나한테 기본 상식, 사회생활 능력 주입하기였으니.
…으음. 그런 면에서는 조앤한테도 정말 신세를 많이 지긴 했어.
나중에 한 번 제대로 한 턱 내야겠는 걸?

사실 바이스 님은 몰라도 나는
이전부터 아우렐리아의 정령들과는 꽤 교류했던 편이야.
칼라르에서 마도 공학을 그대로 적용하기엔 어려움이 있어도
그 지식은 필요하다고 생각했거든.
라리마 님의 호의로, 아우렐리아의 최고 장인인
아스테리아 양과는 특히 자주 서신을 나누곤 했지.
…불행한 사건으로 인해 지금은
만나보지 못하는 상황이지만.
모쪼록 조만간 한 번 다시 만나뵙고 싶네.

가끔 '기억이 아무것도 없었던 것이 불안하지 않았는지'
'힘들지 않았는지' 질문을 받는 일이 있었는데.
사실, 잘 모르겠어.
정말 '아무것도' 기억나지 않거든.
그래서 오히려 기억을 지닌 상태에서 눈을 뜨고
이 에덴에서 자아를 확립해 나가는게 어떤 경험인지…
나는 도저히 상상이 가질 않아.

때로…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아주 작고 귀여운 설탕공예처럼 느껴질 때가 있어.
이 아름다운 것들에게 조금이라도 힘을 주면
금방이라도 파삭거리면서 사라져 버릴 것 같아서…
그러면 안 되는 걸 아니까
최선을 다해 그러지 말자고 다짐하곤 해.
하지만 때로는… 정말 힘을 줘버리면
무슨 일이 생길까.
그런 호기심을, 주체하지 못할 때가 있어.
곤란하게도 말이야…

내 ANIMA의 대부분은
칼라르의 백은 시스템을 작동시키는 데에 사용되고 있는 만큼…
지금의 내 인격 또한 불완전한 형태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
ANIMA를 분할하고 옮긴 건 나 자신이니까,
의식을 주도적으로 가지고 있다는 확신은 있지만…
정말 나는 '르네'가 맞을까?
지금의 나는 그때의 나와 동일한 인물일까?
...가끔 그런 생각을 하곤 해. 후후.

바이스 님은 첫인상만 보면
상당히 입도 험하고, 냉정해 보이지만…
실은 나는 그 분만큼 정에 약하고
남을 좋아하는 정령은 본 적이 거의 없는 거 같아.
효율을 생각하면 절대 하지 말아야 할 일들을
계속해서 벌리시곤 하거든.
어찌 보면 지도자로써는 어리석을 수도 있겠지만…
난 반대라고 생각해.
그런 분이기에, 나라를 이끌 자격이 있는 거야.
정이 많고, 사랑이 넘치니까.
그런 면에서… 나는 불합격이고. 후후.

다들 사랑을 되게 어려운 개념으로 생각하는 거 같은데,
난 지극히 단순하다고 봐.
조금이라도 더 신경 써주고 싶고,
편의를 봐주고 싶고, 안 힘들었으면 좋겠고.
곁에 계속 있고 싶고, 바라만 보고 있어도 행복해지고.
그런 감정이 조금이라도 들면,
그게 바로 사랑을 느끼는 거 아닐까?

스스로도 인지는 하고 있어. 많은 것에 있어서
'나'의 기준이 남들의 기준과는 다르다는 걸.
내가 당연히 할 수 있고 당연히 할 일들이
일반적으로는 할 수 없는 일이라는 것도.
그래서 나는 남들에게 나의 기준을 강요하지 않는 대신
남들에게 온전한 기대감도 품지 않지.
…차갑다는 건 나도 알아.
하지만… 쉽지 않네.
어쩌면 구원자.
…너라면 나의 기대에 부응해줄 수 있을까?

오늘도 좋은 하루~♪
흠, 그때 그 연구 자료를 어디다 뒀지…
어디 보자, 오늘은 뭘 해야 하더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