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기하게도 요즘 들어
유난히 시간이 흐르고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네요.
못 보던 사이 이디스도 꽤나 듬직해졌고…
클로이도 뭔가 좀 철이 든 거 같기도 하고.
다른 기사단원들도 점점 성장하고 있는 게 느껴져서…
후훗. 저도 질 수는 없죠.

9호 방주에서 지냈던 기간 동안
사실 꽤나 복잡한 심정이었습니다.
게이트 사건의 주모자들 또한 결국
저희와 마찬가지로 삶의 위협에 맞서 발버둥 치고 있었다니…
살기 위한 투쟁을 하고 있다는 점에서는
저희는 같을지도 모르겠어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동정하거나
편들고 싶지는 않아요.
당장은 어깨를 나란히 하는 협력 관계라 한들,
결국에 저희가 함께 공존하는 건 어려울 테니까요.

사실… 이디스가 솔레이 왕국에 찾아왔을 때에는
상당히 당황하긴 했어요.
그 브리기트 대제의 여식이 와서
다짜고짜 유리아 님을 모시고 싶다고 하니…
내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선뜻
다른 일반 기사들처럼 대하기도 어려웠죠.
그래서 제가 나섰습니다.
제가 내는 '과제'를 통과하면 기사단에 입단시켜 주겠다고요.
일반적인 입단 시험보다 훨씬 높은 난이도로
과제를 낸 만큼, 중간에 포기하리라 여겼는데…
아무리 힘들어도 절대 포기하지 않고
어떻게든 통과하더군요.
그때의 이디스는…
꽤나 멋졌습니다. 후후.

예전에는 죽음을 그리 대수롭게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정령석이 산산조각 나도, 시간만 지나면
부활하는 만큼… 그게 별거야? 라고 생각했죠.
지금 와서 생각하면 무의식적으로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 자체가 상당히 무서운 것 같네요.
죽음을 겪으면 기억을 잃고, 그로 인해
저희 스스로가 잃은 것이 무엇인지조차 인식하지 못하는 게…

만일 모든 일이 정리되고…
조금 긴 휴가를 받을 수 있다면.
그때에는 조금 먼 곳까지
여행을 가보고 싶네요.
생각해 보니 솔레이 바깥으로 나간 적이
그리 많지는 않은 거 같아서요.
조금 더 넓은 세상을 보고,
식견을 넓히고 싶어요.
구원자님도 같이 어떠세요?

그거 아세요, 구원자님?
미리암 하면 보통 총을 떠올리기 마련이지만…
저는 사실 미리암 하면 예전에
미리암이 딱 한 번 보여줬던 검술이 먼저 떠올라요.
확실하게 타겟을 무력화하는 것에 집중한,
나이프를 사용한 일격필살의 검술…
미리암은 별거 아니라고 대충 둘러대긴 했지만…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번 보고 싶네요.

최근 기회가 있어서 헤이즐 님으로부터
좋은 악기 장인을 소개받았는데…
악기 경험이 없는 제가 첫 악기로 구매하기엔
가격대가 조금 부담이 되긴 하더군요.
일단 시작할 때 좋은 걸 사는 편이
모티베이션 유지에도 좋다고는 하는데… 흠…
구원자님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기왕 시작하는 거, 좋은 악기를 사는 게 좋을까요?

최근, 사과 씨앗을 하나 심어봤어요.
예전에 들은 얘기 중에 '비록 세상이 내일 끝난다고 해도
한 그루의 나무를 심겠다'는 게 꽤 인상 깊었거든요.
실제로 저희는 언제 끝날지 모르는 싸움을 하며,
언제 끝이 찾아올지 모르는 나날을 지내고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차피 끝나니까'
같은 생각을 하며 시간을 보내고 싶지는 않아요.
후회가 없게끔,
제게 추가로 주어진 시간을 소중히 여기고자 합니다.

한동안 못 본 사이,
캐서린 님도 꽤나 많이 변하셨더군요.
하지만 캐서린 님의 성격 그 자체는
이전과 크게 다를 바 없이 느껴지네요.
캐서린 님은… 예전부터 흔들리지 않는
강한 의지를 가지고 계셨죠.
캐서린 님은 가끔 비슷한 성향인 클레르를
걱정하시곤 하지만…
솔직히 제가 볼 땐 둘은 정말 닮았거든요.
그래서 때때로 조마조마함을 느끼긴 하네요.

앞으로 살아감에 있어, 제게는
매 순간순간이 투쟁이겠죠.
하지만 그 사실을 슬퍼하지는 않을 거예요.
반복되는 투쟁 속에서 전 계속해서 강해질 테니까요.
언젠가는… 제가 두른 이 죽음의 기운 또한
완전히 받아들여 다른 형태로 승화시킬 수 있겠죠.
그 순간이 오는 걸…
부디 기대해 주세요, 구원자님.
제가 최고의 검이 되는 순간을.

안녕하세요, 구원자님.
클로이 녀석…
사고 안 치고 있겠지?
오늘 검은 매 기사단의 일정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