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당신이 바로 운명에게 선택받은 '그 존재'인가요.
이렇게 보니, 정말로 평범한 인간이군요.
어째서 운명은 이렇게 작고 평범한 인간을 골라
그런 무거운 사명을 부여한 건지…
이것 역시 그릇된 종말이 찾아온 탓이겠지요.

솔레이, 아케나인.
이 장소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군요.
아주 먼 옛날, 이 장소는 황무지에 불과했었죠.
그 땅이 이렇게나 번성하다니 놀랍군요.
당신이 이 땅에 찾아올 운명이었기 때문일지,
그게 아니라면…
아니… 아무것도 아닙니다.
제 말은 잊어버리도록 하세요.

음식물을 섭취하는 것은 즐기지 않습니다.
인간처럼 음식을 먹지 않더라도,
움직일 마력을 보충할 방법은 얼마든 있으니까요.
그래서 아주 가끔 어쩔 수 없이
입에 음식을 대게 되면…
가벼운 음식마저도 지나치게
자극적으로 느껴지곤 하더군요.
하지만 이곳의 토스트는…
자극적이더라도 그렇게 나쁘지는 않은 것 같군요.

아우렐리아의 천공에 있는 공중 도시는
7개의 땅으로 나누어져 있습니다.
육지에 있는 본토에서 천공섬으로 올 때,
그리고 공중 도시에서 다른 공중 도시로 이동할 때.
우리는 하늘을 나는 '천공배'를 이용하죠.
제법 편리한 물건입니다.
그리고 천공배를 타고 바라보는 밤하늘과
아우렐리아의 야경은 어떤 풍경보다 아름답죠.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당신에게도 보여드리겠습니다.

아우렐리아의 '하얀 태양'은 공중 도시들의 부유를
안정적으로 고정시키는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또한, 도시 전역에서 모이는 모든 마력을
모으고 관리하는 저장고 역할도 하고 있죠.
그렇게 모인 마력을 어디에다 사용하는지,
궁금한가요?
언젠가 반드시 찾아올 날을 위해 대비하고 있다…
정도만 말해 두도록 하죠.

어느 시대든, 예술은 지성체의 마음을 지배하는
신비한 힘을 가지고 있지요.
저는 아주 옛날부터 예술이 마음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치는지 지켜보았습니다.
비록 허상에 불과해 보일지라도,
어느 시절이건 가장 강력한 무기로 사용됐죠.
흐음… 역시 예술가에게 보내는
후원금 비율을 좀 더 높여야겠군요.

이 영지에 가끔 방문하는 그 아이,
칼라르의 '눈의 현자'가 아닌가요?
그 아이는 저도 눈여겨보고 있었습니다.
만민을 위해 자신의 힘을 희생한 그 업적…
칭찬받아 마땅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우렐리아의 사상과 잘 맞았다면
나의 아이로 들였을 텐데…
아쉽긴 하나, 자신의 방식으로 구원을 찾는 이가
하나 정도는 있어도 나쁘지 않겠죠.

타브리아의 밤의 도시를 지배하는 그자는
쉽게 가까이하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
가장 위험한 독은 달콤한 독이 아니라
무색무취의 독이라고 하죠.
그자가 바로 그런 독입니다.
모르는 사이에 당신을 침투하고,
어지럽혀 망가트린 뒤…
질리거든 부숴놓고 떠날 거랍니다.
대단찮은 왈패지만, 악질적인 쓰레기예요.

가끔 훌륭한 일을 한 아이들을 치하하며
하사품을 내릴 때가 있습니다.
보통 물질적인 것들을 주곤 하죠.
높은 지위, 화폐, 보석, 예술품…
하지만 가끔은 '머리를 쓰다듬어 주세요',
'잘했다고 웃어주시는 것만으로도 보상'…
그런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하는
아이들이 나오곤 하더군요.
그들이 만족했다면 충분하지만…
아이들의 기준은 이해하기 어려울 때가 있군요.

보통, 하사품을 내릴 정도의 일이 아님에도
아이들을 칭찬할 필요가 있다면 사탕을 줍니다.
그저 칭찬해 주는 것보다도, 칭찬과 함께
사탕을 물려주면 '칭찬받았다'라는 증거가 남지요.
제법 효과적이랍니다.
반응도 아이들마다 다르죠.
곧장 먹어버리는 아이, 귀하게 모아두는 아이,
맛을 고르는 아이, 팔겠다고 하는 아이…
후훗…
전부 다 다른 귀염성이 있지 않나요?

아우렐리아 도시 연맹의 영토라고 하면,
보통은 공중 도시들을 먼저 떠올리지요.
그다음에는 7개 도시가 함께 다스리는
지상 위의 본토를 떠올릴 테고요.
하지만 사실 아우렐리아의 영토는
하늘과 지상이 전부가 아니랍니다.
아우렐리아를 둘러싼 바다와,
그보다 더욱 깊은 심해까지 우리의 영토지요.
심해의 영토에서 우리가 무엇을 하는지는,
언젠가 알게 될 날이 있을 겁니다.

정치의 기본은 책략과 실행입니다.
가장 효율적이고 강력한 책략을 모색하여,
성공률과 효율이 좋은 방법으로 실행합니다.
더러운 협잡이든, 뻔뻔한 연기든,
목적을 이룰 수 있다면 아낄 필요가 없죠.
그럼 가련하고 귀여운 소녀 같은 연기를 해서
상대를 방심시킬 때도 있냐고요?
…후훗, 무슨 말인지 잘 모르겠군요.
마음대로 상상해 보시지요.

연합국에 소속된 일곱 국가 중
가장 방심할 수 없는 수장을 꼽으라 한다면…
역시 타브리아의 대제, 브리기트겠군요.
단순히 가장 큰 영토와 강한 군사력을
지녔기 때문에 경계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그자는 미래에 대한 대책이 없어요.
절대적인 '힘'의 가치를 과신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실패가 어떤 결과를 낳을지
모르지도 않는 이가… 역시 신뢰할 수가 없어요.

제가 공무를 볼 때 착용하는 가면은
제게 무척 큰 의미가 있는 물건입니다.
인간처럼 비유하자면,
가족의 유품 같은 물건이라고 할 수 있죠.
이 가면을 쓸 때마다 상기하곤 하죠.
제게 부여된 의무가 얼마나 무거운 것인지.
그리고 제가 혼자가 아님을 떠올리곤 한답니다.
이제는 비록 그분들을 다시는 만날 수 없습니다만.
저는 혼자가 아니었어요. 그런 시절이 있었지요.

저는 입장상 아우렐리아를 길게 떠날 수 없어요.
그러니 다른 지역을 보고 올 기회가 적죠.
여행 같은 여흥을 즐기고 싶다는
나태한 말은 아닙니다만…
아무리 그릇된 세상이라고 해도,
많은 영혼들이 살아가는 여러 장소를…
조금 더 자세히 관찰해 견문을 넓힐 시간이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가끔 합니다.
그러니 괜찮다면 당신이 본 여러 풍경을
내게도 알려주세요. 귀 기울여 듣겠습니다.

저는 음식을 동원력으로 삼지 않아,
허기는 느끼지 않더라도 맛은 느낄 수 있습니다.
그래서인지 제가 음식을 즐기지 않는 걸 알면서도
아이들이 가끔 음식을 가져올 때가 있습니다.
'정말 너무 맛있으니까 제발 한번만 드셔주세요!'
라면서, 내게 어떻게든 먹어달라고 하더군요.
사실은, 그렇게 들고 오는 음식들 중
정말로 '맛있다'라고 느낀 건 없습니다만…
아이들이 기뻐하는 모습을 보기 위해서
가끔 먹고 있습니다. 뿌듯해하는 모습이 귀엽죠.

…저도 육체를 가지고 있으니,
그에 따른 본능을 아주 느끼지 못하는 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저는 잠을 자지 않아도 되지만
수면을 취할 수 없는 것은 아닙니다.
아주 가끔… 지나치게 피로하거나,
지나치게 편안한 분위기일 때는 졸기도 하더군요.
하지만 그건 정말로 가끔이었는데…
요즘 당신의 곁에 있으면 자꾸만…
졸음이 몰려오는 건, 당신이 피곤하기 때문일지.
아니면 편안하기 때문일지. …잘 모르겠어요.

제 삶은 언제나 한 방향을 향해
끊임없이 나아가며 쟁취하는 투쟁이었습니다.
올바른 운명의 길로 모두를 이끌어야 할 제가
헤매거나 포기하는 걸 용서할 수 없으니까요.
하지만, 당신은 제가 모르던
새로운 삶을 알려주었어요.
당신에게 받은 빛이 제게 어울리지 않아,
가끔은 두려워질 때도 있지만…
이제 더는 헤맴이 두렵지 않습니다.
당신과 함께 있으니까요.

인간들은 바다를 '생명의 보고'라고 불렀다지요.
이 시대의 바다 역시 많은 생명의 원천이며,
지금도 무수한 생명의 보금자리 역할을 하고 있죠.
하지만 정작, 인간은 바닷속에서 살아갈 수 없죠.
인간을 본딴 정령들 역시 마찬가지.
그렇게 생각하면, 태어난 곳으로 돌아갈 수 없는
우리의 생은 정말로 외로운 것이지요.
…조만간 함께 바다에 갈까요.
거기서 당신과 파도를 바라보고 싶군요.

'섭리'에 얽매인 우리의 삶에
완전한 해방은 찾아오지 않을지도 모릅니다.
언젠가 우리에게는 그릇된 운명의
진정한 대가를 치뤄야 할 시간이 올 거예요.
하지만…
그것은 아직 오지 않은 미래지요.
미래를 위해 지금을 포기해서는 안된다고
당신이 제게 알려주었으니까요.
저는 언젠가 '그때'가 온다고 하더라도,
이 순간의 행복을 후회하지 않을 거예요.

오늘도 변함 없는 하루군요.
그분께 오늘도 구원의 기도를…
어디서부터 계획을 짜 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