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 구원자님이다!
좀 있으면 날 보실 것 같아…!)
(어, 어, 어떡하지…?
어떻게 인사할지 생각 안 해뒀는데…!)
(우으으, 머리가 하얘질 것 같아…
이, 이럴 때는 어떻게 해야…)
(에잇, 모르겠다!
이, 일단 도망치자…!)
아.
아, 아, 아, 안녕하세요…
구, 구, 구, 구원자님…
나, 나, 나, 날씨가 참…
좋…죠…?
(우으으, 너무 이상하게 인사해 버렸어…
이 바보 멍청이 도미니크…!)
오, 오래 말하지 않으면,
목이 꼭 잠기더라구요.
목이 잠기면 목소리가 이상해져서,
어쩌다 누가 말 걸면 엄청 당황스러워요.
그래서 평소에 말을 많이 해둬야 하는데…
저, 저는 그게 쉽지 않더라구요…
우으으, 이 악순환을 끊어내야 하는데…
처, 처음 보는 정령한테는…
어떤 이야기를 꺼내야 할지 모르겠어요.
제이드는 가볍게 이야기 나눌 만한,
주제나 소재를 제시해 보라고 하던데…
이것저것 생각해 봐도,
막상 그 상황이 되면 머리가 하얘져요…
후으으으…
저, 저는 진하게 추출한 커피를…
무, 무척 좋아해요…!
혀가 아릴 정도의 쓴맛을 느끼면…
짜릿한 느낌과 함께, 스트레스가 풀리거든요!
설탕이 안 든 완전 쓴 초콜릿도,
종종 찾아서 먹고 있는데…
다들 제 식성이 이상하다고,
놀라더라구요…
먹어보면 꽤 괜찮은데…
우, 우연히 알게 된 이야기이긴 한데…
유리아 님이 강렬하게 매운 음식을,
좋아하신다고 들었어요…
유리아 님도 저처럼,
강한 맛으로 스트레스를 푸시는 걸까요…?
그, 그런 거라면…
뭔가 동질감이 들어서 안심이 되네요…
발표나 연설을 잘하는 정령들 보면,
정말 대단하고 신기해요…
저, 저는 그냥 남들 앞에 서 있기만 해도…
식은땀이 나고 힘든데…
그렇게 수많은 이들의 시선을 이겨내면서,
자신의 뜻을 전달한다는 게…
…저에겐 하나의 기적처럼 보여요.
제이드가 그랬는데,
저랑 비슷한 성격의 정령이 있다고 들었어요.
그 포, 포션을 아주 잘 만드는…
정령이라고 들어서…
그분께 긴장을 풀어주는 포션을,
따로 주문해 보려고 했는데…!
에, 에버톡 보낼 용기가 안 나서…
아직도 주문을 못 했어요… 후으으…
(우와, 도마뱀 인형이다…!
엄청 귀엽게 생겼어…)
(인형… 사고 싶은데…
왕이 인형이나 산다고 뭐라 하면 어쩌지…)
(으음, 지금 주변에 아무도 없으니까…
몰래 빨리 하나 사버리자…!)
앗! 구, 구원자님…?
언제부터 여기에…?!
저, 저는 딱히 인형 사려던 게 아니었어요…!
저, 정말로요!
저, 저는 도마뱀이랑 개구리를 좋아해요…!
미끈미끈하고 둥글둥글해서…
너무 귀엽거든요…
게다가 작고 연약한 친구들이라,
왜, 왠지 보호해 주고 싶구요…
지, 지금은 여러모로 정신이 없지만…
나중에 여유가 생기면 꼭 기르고 싶어요…!
부, 부끄러운 특기지만…
저는 도망치는 걸 잘해요…
부끄럽고 민망할 때마다,
그 자리에서 도망치다 보니…
도, 도망치는 실력이…
점점 좋아졌어요…
다들 달리기 시합을 나가보라던데…
그런 건 너무 부끄러워서…
(휴우… 겨우 도망쳤다.)
(여기서 탈리아를 만날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어…!)
(갑자기 말 걸어서 도망쳤는데,
혹시 기분 나빠하면 어떡하지…?)
(후으으… 바보 도미니크!
도망치기만 잘하는 이 멍청이…)
탈리아가 제 초상화를 그려준 적이 있는데…
…그때 그림에 관한 제 감상을,
탈리아에게 제대로 말하지 못했어요.
그, 그래도 성의가 있는데…
차마 못 그렸다고 하기가…
호, 혹시 모르잖아요…
탈리아만의 독특한 화풍 일수도 있고…
저, 저의 취미는…
그림 그리기에요…!
자, 잘 그리는 편은 절대 아니지만…
뭔가 그리는 걸 좋아하거든요…
나, 나중에 시간 될 때…
제 그림 공책… 보, 보여드릴게요!
대, 대신 소문만 내지 말아주세요…!
제, 제가 그림 그리는 거요…
예전에 학교를 다녔을 때…
그때의 선생님은 꼭 일기를 쓰라고 하셨어요.
자신을 되돌아볼 수 있고,
문장력도 좋아질 수 있다는 이유였죠.
그, 그래서 한동안은 열심히 썼는데…
나중에 읽을 때마다 너무 부끄러워져서…
점점 안 쓰게 되었어요…
후으으…
…저의 정치적 입지를 위해,
국서를 들여야 한다는 정령들이 있어요.
저, 저는 아직 국서를 맞이하는 건…
시기상조라 생각해요…
제가 안정되어야 결혼도 할 수 있는 것이고…
그, 그리고…
겨, 결혼은 좋아하는 분이랑…
하, 하고 싶어요…!
저, 저는 제가 왕이 될 줄 몰랐어요.
학교를 다닌 이후로,
여러 가지 장래 희망을 생각했는데…
그중에 왕은커녕,
왕과 가까운 일도 없었죠.
그래서 지금 현실이 실감이 안 날 때가 많아요.
이, 이제는 적응해야 할 텐데 말이에요.
가, 가끔 생각해요…
어째서 나였을까…
어째서 선왕께서는,
나를 왕으로 지목하신 걸까…
워, 원망하는 건 아니고…
그냥 정말 궁금했어요…
그분이 저를 어떻게…
평가하셔서 그러신 건지…
그냥, 그분의 생각이 알고 싶더라구요…
구원자님은… 혹시…
짚이는 부분이 있으실까요…?
제, 제가 지금은 이렇게…
마, 말도 더듬고… 말도 잘 못 하지만…
어, 언젠가는 나아지기 위해…
계속 노력하고 있어요…
예를 들어 상상 훈련을 하기도 하는데…
연설을 잘하는 저를 상상하는…
그런 훈련법이에요…!
아! 뭔가, 부끄러운 이야기를…
하, 한 것 같은데…
왕의 자리가 버겁다고 느낄 때는 많지만…
그래도 이 자리에서 도망치는 건,
안 하고 싶어요.
이, 이런 왕이라 해도…
왕으로서 이루고 싶은 꿈이 있거든요…
저는 그 꿈을 이룰 때까지,
계속… 계속 달려볼 거예요…!
그러니까, 구원자님…
이런 저를 지켜봐 주시겠어요…?
오, 오늘은 왠지… 도마뱀을 만날 것 같아.
누, 누가 갑자기 말 걸지 않았으면…
오랜만에 그림 그리러 갈까…